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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에테르, 플라스마, 그리고 석유

최은총

이웅철 작가는 가상과 실재 그 사이 매개되거나 매개될 수 없는 지점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오브제를 3D 스캐닝하여 디지털화하거나, 무빙 이미지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실제 공간에 다시 불러오는 등의 방식으로 작업해 왔다. 이후, 작가는 물리 법칙에 적용 받는 조각이나 설치를 제작하고, 이를 디지털 매체로 경유하는 방식으로 현실의 법칙을 비트는 방법을 취함으로써 한 개인을 초과하는 시공간에 대한 층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는 지극히 개인적이여 보이지만, 산업화 이후 인류란 공동체를 지탱해온 에너지이자 물질이기도 한 석유라는 소재를 통해 그 다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의 아버지는 1970~80년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중동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들은 중동의 뜨거움과 어둠, 모래와 석유, 건설 자재와 노동의 풍경은 작가에게 낯설지 않으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로 작동했다. 1970년대 중동은 전 세계 에너지 자원의 중심인 석유를 손에 쥐고 산유국을 중심으로 경제적 협력 체계와 공동 외교 전략을 구축하며 전 세계를 겨냥한 두 차례의 석유 위기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이후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석유는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약 46%에 달할 만큼 1차 에너지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1] 따라서 석유 시장의 변화는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에너지 생산국과 수출국 간의 외교 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은 이러한 이해관계 속에서 발생했다.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이후, 아랍 산유국 연합(OAPEC)은 석유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아 이스라엘을 지원한 서방 국가들에 대해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국제 유가는 약 4배 가까이 폭등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확산되는 등 심각한 경제적 충격을 초래했다.[2]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석유 수입 대금이 급증하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되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건설업체들의 중동 진출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국내 기업들은 대규모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외화 획득에 나섰다. 당시 석유라는 물질이 정치경제적 이해와 얽히며 발생시킨 전세계적인 충격은 작가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중동으로 건너가 노동을 시작하게 한 직접적인 계기 된 것이다.

석유가 불러들인 충격은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인 연쇄를 불러일으켰다. 이 연쇄적 사건은 미국의 SF 소설가 래리 니븐(Larry Niven, 1938~)에게도 ‘마나(Mana)’라는, 그의 세계관 속에서 마법의 원동력이 되는 초자연적 에너지 개념을 탄생시키게 했다. 그의 소설 The Magic Goes Away(1976)에서 마나는 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이지만, 동시에 한정적인 자원을 뜻한다. 이 책은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이 현대 문명이 깊이 의존하면서도 그 대체 방안을 찾지 못하던 에너지인 석유를 무기화해 휘두르던 모습을 은유한다. 당시 저자의 눈에 비친 석유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해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파동이자, 마치 마법과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이를 남태평양 멜라네시아와 폴리네시아 일대에서 ‘기’와 유사한 영적 에너지를 가리키는 용어인 ‘마나’에 빗대었으며, 이는 물질이 곧 신화로 전화(轉化)되기 시작한 시대상을 꿰뚫은 통찰이었다.

이 사실을 접한 작가는, 실질적으로 한정된 에너지 자원인 석유를 가리키면서도 마법, 기, 영력, 에테르(aether) 등 신화적이거나 공상적인 상상이 깃든 ‘마나’의 개념에 관심을 기울인다. 작가에게 석유는 아버지가 중동으로 건너가 노동하게 한, 지극히 현실적인 물질이자 동시에 인간이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근원에서 비롯된 신묘한 에너지로서 존재하는 ‘마나’와 같은 것이었다. 그 결과, 작가는 마나라는 용어의 탄생과 활용에 드러나는 역사적·상징적 면모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후 〈마나의 기원〉(2025)이라는 작품을 통해 마나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에너지이자, 현실과 다른 차원을 연결시키는 미디엄”이라고 정의한다.[3]

이후, 작가는 가상과 실재의 연결 지점 중 하나의 상징으로서, 물질이자 영적 에너지인 마나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마나라는 개념을 시각화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작업의 근간이 되었던 조각과 디지털 매체 사이의 유비적 긴장감도 함께 불러오게 되는데, 이는 니븐의 소설 속에서 ‘마나’의 형태가 유체(fluid)로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마나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안에서 유체역학을 다룰 수 있는 기능을 만져보면서, 노이즈와 웨이브, 입자와 파동의 형태를 통해 액체-기체-플라스마(plasma)의 변화를 제어할 수 있게 된다.[4] 이 과정을 거치며 작가는 현실과 가상, 구상과 추상을 뚜렷이 구분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고, 더불어 미술 밖 세계의 이야기를 자신의 작업에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표현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5]

그 일환으로, 작가는 마나라는 소재를 경유하여 아버지가 들려준 중동의 풍경과 노동 경험의 기억을 전승하면서도, 지금의 현실과 자신만의 세계관을 결합한, 실재이자 동시에 가상이기도 한 영역을 창출하는데, 그 시작은 〈전망〉(2023)이다. 작품은 “생각 속에만 있을 수 있는 전망”을 빚어내기 위해 모래 속에서 비정형적인 검은 돌이 떠오르는 풍경을 그려낸다. 이후. 새카맣고 거칠던 돌의 표면은 순식간에 금빛 금속처럼 보였다가, 이내 부글부글 끓으며 지면 위로 흘러가고 흩어진다. 인간에게는 “생각을 삭제하는 더위가 찾아오는 온도”지만, 그것은 “썩기 좋은 온도”에서 탄생하며, “모래”와 “어둠” 가운데서 나타난다.[6] 그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마나일 것이다.

작가가 표현하는 마나는 중동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한가운데서, 밤에 찾아오는 짙은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그리곤 아버지에게 미래의 씨앗이 될 하나의 증표를 전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가 실제로 아버지로부터 건네받은 ‘검은 돌’이다. 이 ‘검은 돌’은 《검은 돌과 다리미》(디스이즈낫어처치, 서울, 2023)라는 전시의 제목으로 이어진다. 검은 돌이 지녔다는 전망은 “아주 작은 세계를 녹여 만든 것”이거나 “다른 세계의 파편”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7] 동시에 그것은 아버지의 땀이 중동의 모래 속에 스며들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작가에게 전해질 것이라는 현실의 증거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검은 돌이자 마나는, 손 안에서 굴려지는 하나의 조각이면서도 포착하기 어려울 만큼 검고 짙은 상상이 된다.

〈현자의 돌: 최초의 사물〉(2024)은 이러한 마나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작업이다. 이 작품에서 영상은 연금술적 상징인 현자의 돌이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전망〉에서 등장한 검은 돌의 이면과 그 기원을 신화적 차원에서 재구성한다. 〈전망〉이 뜨거운 온도와 모래, 어둠이라는 조건 속에서 물질의 출현을 제시하는데 집중했다면, 이 작품은 인간의 감각과 시간으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물질. 안에 녹아든 심원한 시공간을 가시화한다. 이 작품에서 물질은 더 이상 물질 자체로만 남지 않는다. 그 안에는 자원의 채굴과 공급, 권력과 자본의 작용,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인간의 육체적 노동과 기억이 축적되어 있으며, 이는 대를 이어 이어지는 삶의 증표로 읽힌다.

〈현자의 돌: 최초의 사물〉은 이전의 마나 연작과 달리 인간의 신체가 전면에 등장해 서사를 이끈다. 영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인물은 뜨겁고 어두운 지구의 한 좌표에서, 황금빛 도시를 세우기 위해 벌거벗은 채 땅을 두드린다. 그의 반복적인 노동 끝에 다시 현자의 돌이 생성되고, 그것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 경로를 따라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거나 땀방울처럼 반짝이는 결정체가 떨어지는데, 이는 노동의 집약체인 땀방울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자본의 결정체로 전환되는 순간이자, 기억이 예술의 이미지로 되돌아오는 장면으로 읽힌다.

이러한 전환의 순간은, 석유가 검은 돌과 현자의 돌로 변주되는 궤적과 긴밀히 호응한다. 에너지가 물질로, 노동이 자원으로, 다시 이미지와 신화로 전환되는 과정을 드러는 것이다. 이 순환 속에서 이웅철의 작업은 노동에 의해 축적되는 자본의 논리와, 동시대 에너지 자원이 형성되는 근원을 상상적 차원에서 호출하면서도, 그 작동 구조를 비유적인 장면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세계가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유체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마나’라는 개념을 통해 드러낸다. 이때 마나는 신화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조건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개념적 장치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단순한 환상이나 공상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자의 돌–검은 돌–석유로 이어지는 유비의 연쇄 속에서, 인간의 무한함과 유한함, 희망과 절망, 노동과 예술이 서로를 비추며 녹아드는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결국 우리의 삶이 가상이자 실재이며, 찰나이자 무한이고, 노동이자 예술임을 작가가 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 IEA(International Energy Analysis), Key World Energy Statistics Report 2020..

[2] 박복영, 「세계 석유시장의 동향과 전망」 , 2007, 『대외경제정책연구원』.

[3] 이웅철, 〈마나의 기원〉(2025) 참고.

[4] 이영철, 『검은 돌과 다리미』, 「사고’와 ‘사라짐’의 예술이라는 문지방: 이웅철의 미디어 아트」, (서울: 파킹페이지프레스, 2024), 90.

[5] 앞의 글.

[6] 이웅철, 〈전망〉(2023) 참고.

[7] 실제로 작가는 그의 아버지가 검은 돌이 운석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한국으로 가져온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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