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비틀리고 확장되는 것에 관하여
가상계와 실재계에 관한 논의는 지성사의 오랜 주제였다. 기술이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남아있던 ‘가상(virtual)’을 우리 눈앞에 구현했을 때 이는 현상(phenomenon)이 되었고, 곧 현존(existence)으로 이어졌다. 예술에서 이 현존의 감각은 가상을 경험적 주제로 환원시켰는데, 이웅철의 작업세계는 여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조각과 영상 매체의 기술적 속성과 역할을 중심으로 실재와 가상이 뒤섞인 혼합현실을 물리적 세계로 끌어오고자 했다.
그의 개인전 《X : 이상한 정원》은 예술의전당 청년작가 전시제작지원공모 〈XYZ: 공간좌표〉가 선정한 첫 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는 전시공간을 공간적 매개로 삼아 가상계와 실재계가 중첩된 혼합현실을 구현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3D 스캐닝 후 재구성한 반복영상들과 캐스팅되거나 수제작된 오브제와 디지털 조각들, 배경을 구성하는 프랙탈 이미지들을 선보인다. 그에게 있어 전시공간은 그 자체로 역사적 밀도를 갖는 것으로 일종의 경험적 실재와 인식적 가상이 뒤엉킨 중간자다. 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미디어의 전통적 역할을 해체하고 이들의 연접을 통해 발생가능한 새로운 기능들에 관심을 둔다. 물질성이 극대화된 거대한 조각들과 회화적 이미지에 운동성을 부여한 영상 이미지들은 관객을 초현실적 세계로 진입시킨다. 이 때 전시공간은 관객에게 특정한 감각과 인지를 제공하면서 그들의 미적 경험을 끌어오는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전시 전체가 하나의 작업으로 완결을 갖는다. 이 완결은 관객마다의 참여와 경험의 재생산을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며 역동적 힘을 형성한다. 이러한 작가적 기획은 일종의 총괄을 담당하면서 개별 작업의 의미를 다소 지우고 서로의 강력한 연결과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힘을 발생시키고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자율성을 생산하게 한다.
가상계와 실재계의 접점을 모색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는 그가 처한 환경으로부터 기인했다. 그에게 있어 기술 프로그램은 일종의 협업자다. 작가는 일상에서 수집한 오브제나 직접 만든 물건들을 크로마키나 3D프로그램으로 스캐닝해 알고리즘을 통해 다양하게 변환하는 실험에 몰두한다. 그는 감각적으로 수집되는 정보와 경험의 진실성에 간혹 의문을 가졌는데, 3D프로그램의 가상성은 물리적 속성들을 실재처럼 구현하고자 하고 물리적 경험들은 때로 인간의 감각에 혼선을 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인식적 혼란 사이에서 그 기이한 자기경험을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모호한 경계의 상태를 관객에게 드러내기 위해 기술적 변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전시공간 안에서 개별인 동시에 묶음으로 던져지면서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의 단초가 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설치공간은 ‘이상한 정원’(2022)으로, 반복적 도형 패턴들과 함께 거대한 물리적 압도감을 느낄 수 있는 조형물과 자연의 형태를 지닌 풀과 돌의 설치작업들로 이루어져 있다. 벽의 패턴들은 식물, 세포, 수학적 연결 등 자연과 생명의 근본적 형태를 의미하며 동시에 컴퓨터 알고리즘으로부터 생산할 수 있는 무한하고도 무의미한 인위적 결과들로 읽히기도 한다. 원형의 조형물은 무게감을 가늠할 수 없는 단순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주변의 돌과 나무가 이 조형물에 대한 상상들을 구체화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바닥에 놓여 고정될 수 있을 정도의 무게감을 지니며, 중력의 힘을 받고 자기 힘으로 지탱된다. 또한 크기가 주는 압도감은 문학가 실러(Friedrich Schiller)가 말한 비례와 조화, 공포로부터 발생하는 숭고의 테제와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이상한 정원’ 주변의 모니터와 빔프로젝터로 송출되는 영상들은 이 설치작업과 병치되면서 작가가 의도한 ‘경계의 감각’을 드러낸다. 영상 ‘텅 빈 돌’(2022)이나 ‘세 개의 표면’(2022), ‘이상한 정원’(2022)의 경우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대상들에 대한 무게감, 표면의 질감, 공간감 등에 대한 자동반사적 인식들에 균열을 낸다. 가상에 구현된 돌과 조각들은 경험적 지식과 작가에 의해 제안된 시각화된 가상 사이에서 혼란을 야기하는데, 이 간극 사이를 거니는 미적 경험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혼합현실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80°’(2022)같이 구현된 화면의 온도나 이국적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영상, 자연과 미확인된 인위적 물체가 함께 배치되면서 부조화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구멍난 조각’(2022) 등은 설치공간과의 연계를 통해 실재와 가상을 뒤섞어놓는다.
이웅철의 작업 과정과 결과물은 여러 겹의 시공간적인 행위들을 거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실제 오브제를 제작하고, 이를 평면 이미지인 사진이나 삼차원의 3D 스캐닝으로 물성을 제거한 뒤 무빙 이미지를 제작하는 모니터 안에서 변주된 새로운 물리감과 형태를 부여하면서 실제 공간으로 끌어낸다. ‘실재-가상-실재’를 넘나드는 반복적 과정에서 작가가 생성한 혼합들은 기술매체에 기반하며 이때 기술은 작가와 결합된 하나의 혼성체다. 이 혼성체는 자신들이 경험가능한 모든 현실의 경우의 수를 제안하는데, 바로 이 혼합현실들이 전시를 구성한다. 그리고 전시장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관람 경험들과 인식들이 뒤엉킨 혼돈들이 하나의 커다란 전체가 되는 순간, 작가가 의도한 ‘이상한 정원’은 완성된다.
작가가 무한히 비틀고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 중 하나는 이분법적 세계다. 그는 자연과 인공, 선과 악, 좌우 등 근대적 개념과 법칙이 만들어내는 분리된 경계에 회의하며 그 안을 허물고 새롭게 덧씌울 수 있는 제 3의 무언가에 관심을 둔다. 화이트큐브로 경계지어진 전시장도 이 대상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이곳은 공간이자 동시에 하나의 작업들의 모둠으로, 또 현실 안에서 가상을 체험할 수 있는 이중적 매개로 기능한다. 또 다른 대상은 기존 우리의 인식과 감각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인식될 수 없으며, 인식되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고, 인식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복잡한 논리의 철학적 담론 사이에서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경험적 감각과 가상적 인식들을 비트는 일은 작가에게 흥미로운 주제로 보인다. ‘텅 빈 돌’(2022)은 꽉 차있고 무거운 돌에 대한 우리의 자동반사적 인식에 물음을 던지지만 동시에 여전히 물리적 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모순적 상상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한다. 이 양가적 아이디어는 서로 충돌하면서 우리의 감각이 ‘자연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과 상상가능한 모든 인식과 관련되는 존재불가능성을 가늠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무한히 확장되고 반복되는 것은 작업과 관객 사이에 형성되는 경험들이다. 실제 전시장의 조각들과 가상적으로 구현된 반복재생하는 짧은 영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변형되고 갈라지는 감각들은 관객의 오감을 통과하면서 지속적으로 연결되고 재생산된다. 그것의 끝은 결국 스스로 그 경계와 혼돈을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며 다시금 시작의 출발점이 된다.
이번 전시는 매체와 주제가 동일한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이 기계의 작동자가 되어 세계를 구성할 것인가, 아니면 기계에 들어가 새로운 경험을 만들 것인가? 작가가 선보이는 무한히 비틀리고 확장되는 순간적인 경계의 지점에서, 어느 것이어도 좋다. ■천미림(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