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스펙트럼을 담는 신체적 경험들>
박지형 (독립기획자)
무감각이란 어떤 상태인가? 오늘날 일상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무감각의 상태는 감각이 제거된 부재(absence)의 상태이기보다, 감각적 자극이 편재된 상황에서 지각이 둔화(indifference) 된 상태일 확률이 높다. 즉 외부로부터 격리되어 발생하는 징후이기보다 도리어 외부에 과다하게 노출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경우의 수가 더 많다. 세계에 포화된 도시라는 특수한 사회적 공간은 개인들에게 끝없는 감각의 연쇄를 요구하고, 이는 자극에 대한 피로감을 누적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웅철은 이 과잉에서 비롯되는 정체의 상황을 경계하고 작품을 통해 상쇄할 수 있는 방법론들을 스스로 구축해왔다.
그의 기존 작업들은 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당연시 여겨지던 주변의 공간을 조목조목 뜯어보거나, 눈에 보이는 대상 너머의 것들을 지각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도시의 질량과 질감, 구조를 관찰하는 그가 작업 세계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짚어 내었던 도시의 특성 중 하나는 시스템의 반복성이다. 동일한 상품과 문화가 복제되어 향유되고, 효율성을 고려하여 설계된 주거 공간이나 사무 공간을 점유하는 신체의 움직임은 규격화된 모듈의 복제를 내재한다. 이웅철의 초기 작업은 주로 이 시스템의 속성을 비판적인 시점에서 관찰한 뒤, 임의의 건축적 모듈을 추출, 변형하여 재조합 한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현실의 기하학>(2017)이나 <Color-field Relief>(2018) 모두 벽에 걸리거나 세워진 채로 완결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 작업들에서 주관적 개입의 과정은 다소 감추어진 채, 작가에 의해 조직된 결과론적인 이미지가 우선시되었다. 또한 그는 스스로의 행위를 일종의 축조술로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이는 아마도 많은 작업들이 콘크리트, 파이프, 타일 등 건축의 재료가 되는 매질로부터 출발하며, 모듈을 나열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자의적인 건축적 행위를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그의 작업에서 건축적인 소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며, 도시의 구조적 특징을 효율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장치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시 시스템-건축적 재료-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단편적인 도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 저변의 미묘한 차이들과 실천적 행위 등 그의 작업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읽어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필자는 세계를 향해 열린 몸으로서 수반되는 작가의 신체적 감각이 그 돌파구가 될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점쳐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그의 실험들은 일상의 반복적 리듬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도시를 이루는 기본 단위로서의 모나드를 예민하게 포착하면서도, 그 속의 미묘한 변주들을 감지해내는 신체적 경험을 적극적으로 다룬다. 때문에 작업은 논제를 중립적인 언어로 이끌려던 초기의 어조와 달리 한층 더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소재나 사건을 반영하게 된다. 몸의 실천적 움직임과 이에 따라 생겨난 흔적을 가시화하는 실험은 <뭍길>(2019)과 같은 영상에서 특히 강조된다. 이웅철은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안산의 탄도항 근처의 갯벌에서 도시의 구조로부터 도출된 단일 모듈의 콘크리트 패널을 징검다리 삼아 걸음을 옮겨간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천천히 흔들리며 도시의 조각은 자연의 표면과 접촉한다. 작가는 지속되는 행위를 통해 이질적인 두 환경을 일시적으로 결합하는 수행자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신체는 반복되는 시스템의 한 부분이자 이를 작동시키는 또 하나의 모나드로서 자리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도시의 물리적 구조에 내재한 단위들의 반복을 넘어 디지털 인터페이스 기반의 시스템에서 기인하는 가벼운 시각적, 신체적 체험으로 감각의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현실에 자리하던 사물과 풍경이 가상의 플랫폼에서 용해되고, 픽셀로 직조된 이미지와의 접촉이 일상의 일부가 되는 양가적이고도 파편적인 상황을 물리적 구조의 무게감과 접합시키거나 병치한다. 이는 점차 이웅철이 도시에 관해 갖는 감각지의 폭과 깊이가 증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점진적인 인식의 변화는 즉각 매체적 접근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드론, 3D 프린터와 같은 디지털 도구가 손과 눈의 영역을 확장하는 새로운 경계로 정의된다. 인간이 고안한 기계들은 자동화와 원격 촬영 등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오류와 예상 밖의 효과들을 남기는데, 작가는 이 또한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구동 원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입체적인 경험으로 간주한다. 건축물들은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속에서 중력이 사라진 부유하는 이미지들의 연쇄로 변환되어, 외부의 어떠한 시공간적 변형과도 무관한 가상의 풍경으로 둔갑한다. 3D 프린터는 작가가 현실에서 발견한 유닛의 형태를 입력한 수치에 따라 출력해내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오류를 낳아 기존에 의도했던 바와 상이한 형태들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를 연쇄적인 구조의 틈에서 발견하는 일종의 변주로 간주하고 이들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려 가벼운 조각을 완성한다. <아이스크림 콘크리트>(2019)는 이렇듯 단일한 유닛의 복제의 과정에서 탄생한 실패한 개체들을 혼합 배열한 작업이다. 개체의 표면에는 웹상에서 유포되는 그래픽 무빙 이미지들 중 심리적인 안정과 만족을 가져다주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기분 좋아지는 영상(Satisfying Video)’의 이미지를 덧입혔다. 일렁이는 비정형의 이미지들의 연속은 가상 현실의 표류하는 듯한 유동적 감각을 상징한다.
이렇듯 작가가 무감각의 상태 혹은 환경을 극복하려는 전략은 최근의 작업들을 통해 그 저변을 확대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수용성이 좋은 신체 감각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미 도시적 환경에 노출된 개인으로서 우리의 몸은 이미 도시의 시스템을 내재한 또 하나의 모나드적 존재이다. 따라서 장소와 사물, 시스템과 구조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들고 그 속에서 무뎌진 감각을 환기할 요인들을 발견해내는 몸의 움직임은 그에게 필연적이자 필수적이다. 몸의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장소, 혹은 인간 대 시스템의 접촉과 순환을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볼 때, 이웅철의 축조술은 또 다른 단일한 기념비적 구조를 향해 뻗어나가는 대신 반복 속에서 미묘한 차이를 지속적으로 증폭시키는 언어로서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머지않아 그 실마리들을 길어내는 그의 눈과 손, 몸으로부터 도시 곳곳에 침잠해 있는 또다른 감각지를 새롭게 제안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