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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된 경험 Designed Experience

 

 

김미교 (독립기획자)

 

   오늘날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단편적인 이미지와 텍스트들은 사건의 보도를 위해 적절히 정재되고 계량된 정보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한 보도라는 명목아래 사건의 본질을 단순화한다. 이러한 단순화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들에 관심을 가진 이웅철 작가는 배제된 것들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배제되는 정치적 판단과정 자체를 주목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과정을 극대화 시키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우리의 눈앞에 끌어낸다. 추상에 가까운 부조 작품인 <Polygon>은 대상의 극단적인 단순화로 색면이라는 하나의 작은 단위만을 보여주며, 작가가 알려주지 않는 한 그 색면의 본래 사건과 출처를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이처럼 이웅철은 평온한 일상의 이면을 구성하고 조정하는 정치적 관계들을 전시장 안에 작품과 관객의 관계로 불러낸다. 빠빠빠 연구소에서 선보이는 <현실의 기하학>시리즈를 통해 진행된 이번 작품에서도 이웅철은 책상, 의자처럼 익숙한 사물에 기하학 적인 도형들을 초현실적으로 침투시켜 일상의 안락함 속에 산제해있는 비극적인 상황과 정치의 이미지를 유령처럼 불러일으킨다.

 

설계된 경험

   우리가 활용하는 모든 인공적인 제품과 구조들은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디자인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요하게 고려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사용자 경험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 이하 UX design)’이다. ‘사용자의 경험을 설계한다.’는 것은 사용자 관찰을 통해 실사용자의 요구와 목적을 벗어나는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설계된 경험은 누적과 교육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교육이 설계된다는 부분에서 디자이너가 활용에 대한 특정 의도를 선택하고 다른 의도들을 배제하여 사용자를 자신의 의도 아래 움직이게 한다는 작은 정치적 입장을 발견할 수 있다. UX디자인에 대한 명제는 흡사 사용자를 위한 설계 같지만 그 안에는 정치적 관계들이 작용하고 있다. 이웅철 작가는 그러한 설계 혹은 디자인이 가지는 사용자 경험 교육을 통한 정치적 이슈를 더욱 강조한다.

 

현실의 기하학

   <현실의 기하학>시리즈의 회화와 설치에서는 기하학적인 조형들이 일상적인 오브제와 풍경에 상호침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모습들을 보여주며 우리의 일상적 사물과 공간들이 가진 효율적 권위를 역설적인 불편함으로 드러낸다. 그가 선택한 오브제와 상황들은 우리의 육체적 환경을 좌우한다. 공부하기 위해 우리의 몸을 구겨서 앉는 자세를 취하게 하는 책상과 의자, 빠르고 정확한 효율적 이동을 위해 몇 시간의 불편함과 사고의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비행기,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쾌적하게 살기 위한 아파트 환경은 우리의 신체를 길들인다. 이렇게 설계된 공통의 경험은 하나의 정서적 사회적 무리를 구성하게 한다. 이웅철이 만든 테이블에는 기하학적 도형들이 구석구석 관통하고 있다. 기존에 책상이라는 디자인이 가진 UX 환경을 기반으로 그가 추가적인 설계를 진행한 것이다. 그는 UX디자인처럼 일상의 디자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정치적 요소들을 강조하기위해, 우리가 그 용법을 알고 있는 오브제에 물리적인 불편함을 인지할 정도의 변형을 시도한다. 그 불편함을 통해 일상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정치적 상황들을 음모론처럼 은밀하고 대범하게 제시한다.

 

제시의 방법론

   그는 관객이 작품을 관조하는 전시환경을 통해 작가, 미술작품, 관객의 관계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설계된’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관계를 병치시킨다. 잘 정돈된 화이트 큐브 안에 권위적인 작품의 태도를 제시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빠빠빠 연구소가 가진 2면의 벽과 2면의 유리창을 활용해 작품을 쇼케이스의 형태로 보여준다. 관객에게 상품을 살피듯 작품의 경험은 이웅철이 만들어낸 관통하는 책상과 의자, 분절된 비행기의 모습을 일상적인 다른 책상 혹은 의자와 비행기를 비교하도록 유도한다. 이전 작업들은 권위적인 미술관 갤러리의 환경과 추상적인 작품, 작가의 설명을 모두 경험해야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는 관객이 관조하는 환경 아래 작업들이 드러나고, 작품을 설명해야했던 작가는 전시의 장막 아래 숨는 구조를 취한다. 이러한 제시방식의 실험 역시 철저하게 그가 주제로 삼은 시스템을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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