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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돌과 다리미

작업노트
이웅철

근래에 아버지는 천공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퇴원 후 집에서 요양을 하고 계시던 아버지를 보러 갔을 때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의 내한 소식이 뉴스에서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중동에서 파견노동자로 근무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현재의 폐 건강이 그 시절부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중동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추억을 들려주었다. 40~60도의 기온 속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금의 나로서는 애잔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당시 중동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몇 개 남아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검은 돌과 다리미가 인상적이었다. 검은 돌은 당시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을 느껴서 주웠다고 한다. 그리고 돌을 잘 세워두기 위해 바닥을 쇠줄로 갈아도 잘 갈리지가 않아 어쩌면 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었단다. 덥고 열악한 낯선 타국에서 돌멩이 하나에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을 지금의 나보다 열 살도 더 어린 청년을 떠올려본다. 다리미는 제너럴 일렉트릭 사의 제품으로 아버지가 아직도 사용을 하고 계신다. 당시 중동 파견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져온 전자제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이 다리미였다고 한다. 40년이 지나도 사용이 가능한 한결같은 사물이다. 이러한 물건들은 당시 사막의 열기를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현재 시점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 건설 계획인 ‘네옴시티’를 통해 한국은 제2의 중동 특수를 노리며 과거를 재현하고자 한다. ‘네옴’은 새로운 미래라는 뜻으로서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건설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더 라인’은 높이 500m, 폭 200m, 길이 170km의 주거용 건축물로서 태양광 발전을 위해 건물의 외벽이 거울 같은 반사판 재질로 이루어진다. 그 형상은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 같기도 하고, 사막에 지어진 모습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바벨탑을 상상하게 만든다. 막대한 자원이 필요한 ‘네옴시티’는 친환경 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석유로 획득한 자본을 통해 이후에 닥칠 인류의 위기를 거대한 방주로 극복하고자 한다.

석유 자원을 둘러싼 국가들의 욕망은 경제, 환경, 전쟁 등 인류사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이러한 문제는 희토류나 리튬과 같은 자원 채굴로 이어지며 현시점에 새로운 경로로 접어들었다. 희귀자원에 대한 열망은 달 탐사까지 도달하는데, 헬륨-3와 희토류 등의 자원을 위한 우주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우주 자원에 대한 권리는 선점이 가능한 선진국의 논리로 이루어질 것이기에 과거 자원에 관한 분쟁이 반복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과정의 끝은 어떠한 모습일지, 그리고 그러한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아버지의 경험은 개인적이지만 시대상과 관련하여 자원과 환경, 경제, 기술, 노동 등 여러 문제를 함의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을 줍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다듬고자 했던 의지는 자연을 향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반영되어있다. 다리미로 주름을 편다는 것은 야생의 환경에 도로를 만드는 것처럼 자연을 인공적으로 변형시키는 인간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금속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기술은 언제나 위험을 안고 태어난다. 빈 살만의 네옴시티나 일론 머스크의 화성 탐사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는 인류의 위기와 관련된 일종의 징후로 여겨진다. 어쩌면 비로소 지금이 인류 역사상 지혜가 가장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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